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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

감산사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찰

신라의 수도, 경주 관광의 백미는 토함산 기슭과 중턱에 자리한 ‘세계유산’ 불국사와 석굴암 관광이 대표적이지만, 그 토함산 남서쪽 기슭에는 석굴암 석불보다 조성 시기가 더 이른 것으로 알려진 두 개의 석불로 유명한 사찰이 있습니다.

경주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30분 정도 차로 이동한 7번 국도를 좌회전한 곳에 괘릉이 있는데, 그 괘릉을 지나 토함산 산록으로 2km 정도 들어간 곳에 작은 감산사(甘山寺)가 있습니다.

금당에는 8세기 초기의 석조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1915년 감산사 터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 조미륵보살 입상과 석조 아미타불 입상 두 점이 발굴되면서 감산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두 불상은 광배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감산사의 창건 시대와 창건자, 창건 배경 등이 밝혀져 통일신라 시대 당시 사상과 불상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좌, 719년, 국보 81호) 높이 189.4cm, 너비 107.6cm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 입상(우, 720년, 국보 82호) 높이 206cm, 너비 109.1cm
석불은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광배의 명문에 따르면 신라 33대 성덕왕 시대의 귀족인 김지성(金志誠)은 718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719년, 고향으로 돌아온 김지성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전 재산을 들여 불상 두 점과 감산사를 조성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륵보살 입상의 명문에는 66세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동해에 뿌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미타불 입상에도 47세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같은 곳에 뿌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그 외에도 국왕의 장수와 김지성의 형제, 전처, 후처, 이복형제 등을 비롯한 세속의 모든 중생이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도록 기원했습니다. 이는 「삼국유사」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후기의 삼층석탑

현재 사찰 터에는 최근에 세워진 석조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는 금당이 있으며, 금당 뒤편에는 붕괴된 것을 1965년에 복원한 높이 약 3.3미터의 통일신라 시대 전형적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불국사 일대의 괘릉을 둘러볼 때 이곳까지 들러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운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감산사를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기본정보
관광지명甘山寺
감산사
주소慶尚北道 慶州市 外東邑 掛陵里 6-2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6-2
指定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95호
※ 상기 기사는 취재 시점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지 사정에 따라 현재와 내용이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