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호텔이 늘어선 보문관광단지 부근에 위치한 사적 제47호의 명활산성은 경주시내에서 동방의 명활산 산 정상에 세워진 신라산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모르겠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實聖王 4년(405년)에 왜구(와코)가 명활산성을 공격한 기록으로부터, 그 이전에 축조된 성과 추정됩니다.
명활산성은 최초로 토성에 세워졌지만, 진흥왕의 전후 시기에 석성에 재건된 것으로 보입니다. 산성에서 발견된 진흥왕 12년(551)에 만들어진 명활산성 작성비로 석성축조연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성의 쌓는 방법도 자연의 돌을 그대로 사용한 신라 초기의 돌의 짜는 방법을 보이고 있어, 와지왕 15년(431년)에는 왜구에 이 성이 공격받았다는 기록으로부터 센 모모야마성, 남산성과 함께 신라의 수도, 월성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인 중요한 거점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 16년(647년)에는 상대등(총리에 해당하는 관직)인 비담(毗昙)과 욘정(廉宗) 등이 이를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김유신 장군에 의해 평정돼 곳이기도합니다. 현재는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지고, 곳곳에 옛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만, 토성과 석성의 흔적을 몇개인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명활산성은 2000년 12월 2일남산지구,월성지구,대릉원 지구, 황룡사 지구와 함께경주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에서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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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이름 | 명활산성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보문동 일대 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보문동 일대 |
시간 | 24 시간 |
입장료 | 없음 |
詳細 情報 | 사적 제4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