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龍寺は、新羅真興王14年(553)に創建されて高麗高宗25年(1238年)の蒙古軍の侵攻によって焼失されるまで700年も続いた新羅最大の護国寺院です。特に、真興王35年(574)に鋳成された金銅三尊丈六尊像と善徳女王14年(645/新羅27代)に建立された九層木塔は、真平王の天賜玉帯と共に新羅三寶として知られています。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한 황룡사의 창건은 553년(진흥왕 14년/신라 24대)에 경주 월성(신라의 궁전)에서 조금 떨어진 동쪽에 새로운 궁전을 세우자 하고 있던 곳에 노란 용(황룡)이 나타났기 때문에 궁전 조영을 그만두고 황룡사라는 사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574년에 주존불의 금동삼존장 육존상을 만들고, 584년(진평왕 6년/신라 26대)에 금당, 그리고 645년(선덕여왕 14년/신라 27대)에 당의 유학으로부터 돌아온 신라의 명승 자예(차장)의 권유로 백제의 장인인 아비지(아비지)를 불러 645년에 구층 목탑을 완성했습니다.
구층 목탑은 당시 신라를 둘러싸는 9개의 외국(일본, 중화, 우월, 도라, 매유, 靺鞨, 단국, 여옥,? 貊)을 불력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신앙이 담겨있다 있습니다.
현재는, 사원의 흔적만 남아 있는 황룡사지는, 문화재 연구소의 주관으로 1976년 6월부터 1983년 12월까지 발굴 조사가 행해졌습니다. 늪지를 묻어 그 위에 건립한 황룡사지는 총 면적 약 2만여평이라는 부지에 남문·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 일직선 위에 위치한 일탑 일금당 식가람 배치였습니다만, 장육존상과 목탑 등이 조성되고 나서는 금당의 좌우에 작은 금당이 위치하는 일탑 삼금당식 가람 배치로 바뀌어, 목탑의 좌우에 종루와 경루가 비스듬히 에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황룡사지는 금동삼존길 육존상의 석조대좌와 9층 목탑을 지지한 심초석,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기와류, 용기류, 금속류 등 4만점의 수많은 유물 가 출토되었습니다.
사진 등록 2005-11-12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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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 이름 | 황룡사지 |
주소 | 경북 경주시 규황동 320-1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20-1 |
시간 | 없음 |
입장료 | 무료 |
詳細 情報 | 신라진흥왕 14년(553)(사적 제6호/1963.01.21) |